C는 60대 후반의 영국 노인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작가 지망생이고 본인도 손자, 손녀들이 있는 할머니다. 그녀의 엘레강스하고 기가 빧빧하게 살아있는 영국 여왕같은 영어 액센트와 작가적인 스토리텔링 능력 그리고 빨갛게 염색한 짧은 머리는 세대를 넘어 매력적으로 비춰졌다. 그래서 인지 그녀를 소개해준 친구는 겨우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C는 버거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어린시절을 아주 건조하게만 글로 옮겨도 한 손으로는 들지 못할 축축하고 무거운 글이 될 것이다. 깊은 고통은 창조의 어머이가 되기도 하고 자기파괴의 동기가 되기도 하는 법. 사람은 누구나 그 창조와 파괴의 외나무 다리 위에 서서 선택해야 하는 위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어린시절의 깊은 고통은 성인이 되어서도 당사자를 너무 자주 그 외나무 다리로 소환한다. 그녀의 글쓰기는 아마도 그 외나무 다리에서 부르는 자기 위안의 노래 였을 것이다.
C는 90대인 어머니의 Rest Home(양로원 혹은 요양소)을 일주일에 두번이나 찾아갔다. 외양으로는 어머니를 자주 찾아가는 효녀 딸로 보일 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온 C는 매번 심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채워지지 않은 마음에 구멍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이를 초월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주치의를 비롯한 친구들이 양로원에 자주 가지 말라고 당부 했지만 그녀는 주 2회 방문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왜 그렇게 상처받는 곳에 자주 가야 하는지를 물었을때 그녀의 대답은 "내가 강아지 같애. 주인 발길에 매번 차이지만 다시 주인 곁으로 가는 강아지." 였다. 어머니 방문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뻔히 보였다. C는 원망의 "모성 청구서"를 들이 밀었고 나이드신 노모는 켜켜이 쌓이고 이자가 붙은 청구서 "정산"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모가 정확하게 어떻게 반응 했는지는 모르지만 가벼운 눈짓이나 단어 하나 일일히 수금원처럼 노려보고 있는 C는 어머니의 사소한 행동에서도 어린시절 아픔이 다시 플레이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우울감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다. 염색한 머리의 붉은색 만큼이나 열정적인 C는 정서 결핍도 참 치열하게 겪어내고 있었다.
C의 그러한 "모성결핍 암 말기"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치유되거나 완화라도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연로하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C는 그런 "청구서"마저 들이밀 곳을 잃어버렸다. C는 "폭발"해 버렸다. 내가 본 모성결핍 아동들이 모옷뙨 아이처럼 군다면 내가 경험한 모성결핍 성인들도 정말 비슷한 모습이다. 다만 성인이 못된 아동처럼 행동하니 더 유치뽕짝이라 상대하기 고약하다. 다른 심리학 책이나 소설의 묘사 등 바탕이 될 만한 다른 데이터가 없어서 내 협소한 경험을 적은 것이니 일반화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사람이 못되고 유치한테 짠하게 느껴지면 그 사람은 모성 결핍을 표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는 평소 쿨하고 멋진 사람이었지만 갑자기 쓴맛이 나는 사람이 되어서 주변인들을 이상하게 노려보기도 하고 갑자기 분노를 표출하고 비난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고 고집과 변덕을 동시에 피우기도 했다. 전형적인 퇴행 행동도 보였다. 어린아이들이나 입을 것 같은 발레리나 레이스를 허리에 두르고 춤동작을 보이기도 하고 어쩔줄 몰라 당황하는 주변인에게 반복적으로 반응해달라는 싸인을 보내곤 했다. 어느 날은 진통제를 20알 이상 먹고 스스로 앰뷸런스를 불러서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고 병원으로 갔다. 10일 이상 장기 입원을 하고 귀가했다가 같은 일이 한번 더 반복되었다. 자살시도라고 본인은 이야기 하지만 약한 진통제를 다량 복용한다고 해서 정말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아기가 크게 "응애~~!" 하면서 울때 엄마가 달려와 달래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글에 그 악성 모성결핍 종양이 어떻게 제거되고 퇴원하여 행복한 노년을 맞이했는지 쓰고 싶지만 현실은 디즈니 월드가 아니라서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다행히 얼마전 SNS에 올라온 C의 사진은 프로페셔널하고 건강해보였다. 혹시 악성 모성결핍 성인이 있다면 가까운 전문가에게 심리상담을 받으시기를 추천드린다.
얼마전 아이가 둘 있는 친구를 만났는데 한 아이는 엄마 옆에 꼭 붙어 있기를 원하고 한 아이는 엄마가 눈에 보이기만 하면 충분한 아이였다. 아이들 마다 원하는 모성의 형태가 다르다. 그리고 어머니들 하나 하나 개성이 있으니 줄 수 있는 모성의 모양이나 양이 다 다르다. 그러나 성인 모성 결핍의 극단적인 경우를 지인을 통해 간접 체험하고 나서 나는 허접한 조언을 한다.
"당신 나이 구십에 나이 육십 자녀에게서 청구서를 받지 않으려거든 눈에 넣어 달라는 아이는 눈에 넣어주고 살을 부벼 달라는 아이는 살을 맞대 달라고"
보건 복지부도 "치료보다 예방접종"이라지 않는가. 마음도 예방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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