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철학자의 탄생과 아들 셋 달린 악처 과부의 탄생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처형하는 측에서도 사형이 부담이 되기에 그가 탈옥해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감옥 문은 열려 있었고 열린 문으로 소크라테스의 친구와 제자들이 왕래했으며 그의 지인들은 망명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철학에 대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사형받는 것을 '선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크산티페는 세째 아들을 데리고 소크라테스의 사형이 집행되는 곳에 가서 집행이 진행될 수 없을 만큼 통곡했다고 한다. 마지막 연출을 통해서라도 남겨질 아들들과 과부가 될 크산티페를 위해서 소크라테스가 마음을 바꿔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그저 사랑하는 남편의 다가올 죽음을 슬퍼했을까.
독배를 마심으로 소크라테스는 영원히 위대한 철학자로 남았지만 크산티페는 자의적으로 떠난 연인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불어 아들 셋이 달려있는 과부의 신분으로 그지 같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역전 없는 인생게임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다. 더군다나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세력은 그 시절 그지역의 극우 세력이었고. 극우세력의 관습에 따라 반대세력에 대한 희화화라는 언론공작을 펼쳤으니, 소크라테스에 대한 희곡 '구름'이 그러했고 크산티페에 '악처'라는 딱지도 그리 붙은 것이리라. 소크라테스는 남겨진 부인의 명예마저 지켜주지 못했다. 소크라테스, 알고 보면 그는 진정 나쁜 남자가 아닌가.

소크라테스과 크산티페의 성장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는 다른 타입의 사람이지만 어찌 보면 똑같이 고집스럽고 강한 캐릭터의 사람들이다. 끝까지 자기 신념을 관철시키는 소크라테스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30살이나 많은 그에게 열정적으로 잔소리를 하는 크산티페 둘 다 어찌 보면 한치의 양보도 없고 물러섬도 없다. 개성과 주관이 뚜렷하고 강한 두 사람이 만나 씨름하며 혹은 맞붙잡고 싸우며 함께 성장해 가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맞수였던 두 사람. 크산티페의 통곡은 어쩌면 그 성장과 완성의 맞수를 잃어버리는 슬픔의 표현 일 수도 있겠다.
일의 영역에서 두사람의 관계
주변 소크라테스-크산티페 커플들을 관찰해보면 일에 대해서 두 사람은 협력관계가 잘 되지 못한다. 뜨겁고 열정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일에서 시너지를 얻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다. 크산티페는 철학에 관심도 재능도 없었고 마친가지로 현실의 영역에서 소크라테스는 감각도 떨어지고 영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자의 영역은 서로 다른 재능과 지식과 문법 그리고 네트워킹 방식을 가지고 있고 서로 보완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도움을 주려고 지나치게 참견하거나 서로의 뜻을 꺾고 관철시키려 할 때마다 일은 더 꼬이고 심할 때는 폭싹 망쳐놓게 된다. 장사 수완이 좋은 부인의 비즈니스에 목회자 남편이 조언을 넘어 의견을 관철시킨 사레가 있다. 남편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위치를 변경하고 사업을 확장한 결과 부인의 알짜배기 비즈니스는 높은 임대비용을 부담하지만 손님은 없는 상황이 되었고 간신히 부도를 면하고 비즈니스를 종료하게 되었다. 반대로 사회복지사 남편에게 현실주의적인 부인이 세상적인 성공 요구하며 타박을 했지만 남편은 뜻을 바꾸지 않았고 결국 추구하는 바라 달라서 헤어진 경우도 있다.
철저하게 상대방의 영역에 조력자나 정서적인 지지자로만 남는 것이 서로 다치치 않고 함께 잘되는 길이다.
또 다른 예로 가부정적인 소크라테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보탬이 되어야 하며 당연히 여자가 남자가 하는 일을 서포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능력이 없는 남편의 뜬구름 잡는 일에 자신의 재능과 욕구를 희생하라는 요구가 부당하게 느껴졌고 결국 둘은 각자의 길로 가게 되었다.
만약 두 사람이 성숙하고 정서적 의존성이 심하지 않은 독립적인 성인이라면 경험적으로 빠르게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성공적으로 바운더리를 이미 설정해 놨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는 반복적인 실패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를 멈추지 못할 수도 있다. 정서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결핍 행동이 서로간의 소모적인 간섭으로 반복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아마도 얼마간의 감정소모는 부부간에 어쩔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클 때 혹은 간섭으로 인한 계속되는 실패를 경험할때는 그 내면의 결핍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생각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이런 커플의 경우 이상주의자 남편만큼이나 현실주의자인 부인이 경제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여러모로 가계에 보탬이 되고 가정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크산티페의 욕구가 발산되고 실현되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아내도 여유가 생기고 철없는 남편도 능력 있는 아내의 아량에 덕을 볼 수도 있다. 크산티페처럼 개성이 강한 캐릭터에게 남편의 계획에 따라 꿈을 수정하라는 요구는 굉장히 부당하고 위험한 요구이다.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에게 현실을 위해 철학을 그만두라는 요구는 영혼이 죽은 좀비로 살라는 요구와 진배없다.
만약 그렇게 한쪽의 기를 꺾는 다면 맞붙는 맞수로서 또 씨름하는 파트너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어 함께 성장 수 도 없게 되고 파트너로서 매력을 잃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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