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시간을 벌어주다
탄소 및 여러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 가열 극심해지고 있다. 과학자들의 내일의 뜬구름 같았던 악몽의 시나리오는 이데 일상적인 체험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사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는 몇 년 전부터 초록색에서 건초 색으로 바뀌었다.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늘 항상 초록색이었던 풀밭이 비가 오지 않아 건조한 마른 풀색으로 바뀌었고 여름은 확실히 더 뜨거워졌고 겨울은 예전처럼 춥지 않다. 물론 엄청난 태풍을 경험하는 일 년 이내 기온차가 100도가량 되는 경험을 하는 한국에 비할 만한 변화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항상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계절과 기후 자체가 변화한다는 것의 생경함은 매번 깜놀이다.
탄소배출과 기후변화의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여러 편 본터라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나는 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2019년 어느 날 늘 선명하고 깨끗하기만 했던 오클랜드의 파란 하늘이 아주 샛노랑이 되다 못해 주황빛이 돌 때 '나이 먹으면 눈도 고장 난 다던데 내가 벌써 그 나이 인가?' 하고 눈을 비비던 그날이 왔을 때 까진 말이다. 이게 너무 이상해서 '내 눈이 잘못된 것인가?' 휴대폰으로 찍어보고 관자놀이도 마사지하고 컴퓨터 화면과 비교도 해보면서 '내 눈인가? 내 뇌의 시각처리 능력인가?' 고민하다가 '낮에 보는 노을 같은 건가? 자연이 주는 또 다른 색인가?'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다 결국 단톡 방의 긴 메시지를 체크하고야 '호주 산불의 미세먼지가 1000 Km 날아와 내 일상의 배경색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주 산불에 대해 폭풍 검색을 하면서 몇 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화재로 인해 화상으로 고생하는 불쌍한 코알라가 코앞에 닥친 인류의 미래라는 공포심이 들었다. 나보다는 내 조카들의 미래인가 싶어서 한국의 형제자매들과 폭풍 카톡으로 내가 맛보는 공포를 흥분해서 전달했다.
진짜 문제는 나 따위의 공포심이 아니라 장기간의 화재로 인해 엄청나게 증가한 탄소배출량과 이산화탄소를 처리할 숲의 소실이었다. 이렇게 증가한 탄소라면 인류에게 약속된 멸망은 피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적은 오차범위 안에서 탐욕 찌든 인류가 탄소배출을 줄일 리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노란색 하늘은 Si-Fi 영화의 한 장면임에 틀림없으며 영화의 결론은 현생 인류의 멸망 혹은 재앙을 피한 소수만이 살아남은 미래밖에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인류 문명이 탄소배출을 기반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리라. 외식을 한번 해도 식당에 식재료들이 모여 요리가 되고 고객이 차를 타고 도착해 아름다운 조명 아래 식사하고 식기가 세척되는 모든 과정이 탄소배출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배달음식을 하나 주문해서 먹는다 해도 음식이 조리되는 과정뿐 아니라 일회용 플라스틱이 생산되는 과정 그리고 배달이 되는 과정까지 전부 탄소배출이다. 당신이 소고기를 메뉴로 선택했다면 필요한 소가 목장에서 탄소 방귀를 뽕뽕 뀌면서 다시 탄소가 배출되었다. 그래서 잠재적으로 배출 가능할 탄소의 양을 돈이라고 부르고 우리의 필수적인 소비부터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과시해야 할 것도 결국 배출 가능한 탄소의 양으로 환원된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삶이란 심심하고 생기 없고 적막한 삶이 아니던가.
한동안은 곧 더 가속화될 지구 가열의 징후와 인류 멸망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아니던가. 곧 '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래 봤자 에너지 아끼는 것과 플라스틱 줄이는 것뿐이네. 어쩌겠어 어차피 멸망할 인류.'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금 망령되더라도 즐거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2020년 2월 어느 날 코로나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감염을 막기 위해 이동을 자제하기 시작하면서 탄소배출을 강제로 줄이게 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자동차와 비행기의 사용이 줄었다. 입국 금지를 때리는 것은 고약하지만 덕분에 비행기 취항 편수가 급격히 줄었다. 감염자와 사망자가 생기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지만 전 세계 인류가 역사상 생존을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던가? 탄소배출을 통한 경쟁을 하던 국가와 비즈니스 및 개인들이 배출을 자발적으로 억제하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수백만 혹은 수천만의 사망자가 생겨 인구 감소가 생기지 않고도 인류가 평화롭게 탄소배출을 억제했다는 것은 놀라운 효과다.
생산이 줄고 경제가 하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예상했던 대로 인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도시에 잠시간 갇히게 되고 경기하강으로 자살하고 싶은 자영업자가 많겠지만 이 정도의 억제라면 호주 화재에서 배출된 탄소를 보상할 정도의 효과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오래전에 유행하던 가설 중에 대지의 여신 이름을 딴 '가이아' 설이라는 것이 있다.
지구 전체를 조절 능력을 가진 한 개의 유기체로 보는 가설이다.
별로 증명할 수 있는 가설이 아니어서 소설이나 영화 재료 정도로만 사용되는 가설이지만 요즘은 잔인하지만 은혜로운 가이아 여신이 디스토피아 직행 열차를 잠시 정거장에 세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이 약간의 유예기간 동안 탄소배출 외의 다른 문명의 축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다 소용이 없겠지만 말이다.